
자율주행 경쟁의 승부처가 ‘기능’에서 ‘학습 속도’로 옮겨가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11일 경기도 성남시 포티투닷 본사에서 ‘자율주행 미디어 데이’를 열고, 이 학습 속도를 끌어올리는 핵심 엔진으로 ‘데이터 플라이휠(Data Flywheel)’을 처음 공개했다.
데이터 플라이휠은 차량에서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AI 학습과 검증에 활용한 뒤, 개선된 모델을 다시 차량에 적용해 새로운 데이터를 확보하는 선순환 구조다.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이 구조가 실제 개발 과정에 본격적으로 반영되면서, AI 모델을 더 빠르게 개선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권정현 현대차·기아 자율주행개발센터장(부사장)은 “자율주행 경쟁력은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확보하느냐보다, 데이터를 얼마나 빠르게 학습과 검증, 성능 개선으로 연결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데이터 플라이휠의 출발점은 어디인가
현대차·기아는 전 세계 190여 개 국가에서 연간 700만대 이상의 차량을 판매하고 있다. 이 판매망 자체가 방대한 실주행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잠재적 기반이 된다는 게 현대차그룹의 설명이다.
실제 현장에서는 40여대의 데이터 수집 전용 차량이 주야간으로 운영되며 주행 데이터를 쌓고 있다. 여기에는 단순한 직선 주행뿐 아니라 도로공사 구간, 악천후, 급격한 차로 변경, 이면도로 주정차 차량처럼 현실 도로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엣지 케이스가 포함돼 있다.
다만 데이터 양이 많다고 성능이 저절로 오르는 건 아니다. 전체 주행 데이터 가운데 AI가 어려워하는 상황을 얼마나 잘 찾아내고, 이를 집중적으로 학습시키느냐가 성능을 가른다는 게 현대차그룹의 판단이다. 이 지점에서 올해 초부터 데이터 플라이휠에 접목한 기술들이 등장한다.
하드 이그잼플 마이닝과 컨티뉴어스 트레이닝은 어떻게 맞물리나
하드 이그잼플 마이닝(Hard Example Mining)은 AI 모델이 오인식하거나 판단하기 어려워하는 주행 상황을 자동으로 골라내는 기법이다. 여기서 걸러진 상황은 컨티뉴어스 트레이닝(Continuous Training) 파이프라인을 통해 반복 학습에 곧바로 반영된다.

실제 차량 평가에서 드러난 취약 상황을 다시 데이터 수집과 모델 개선으로 이어붙이는 구조인 셈이다. 사람이 일일이 문제 상황을 골라내던 방식과 비교하면 개발 사이클을 눈에 띄게 단축할 수 있다.
위험한 상황은 어떻게 반복 학습시키나
실제 도로에서 재현하기 어렵거나 위험한 상황은 가상으로 만든다. 현대차그룹은 실제 주행 데이터를 3차원 환경으로 재구성하는 ‘3D 가우시안 스플래팅(3D Gaussian Splatting)’ 기술을 활용해 이런 장면을 가상 공간에 옮긴다. 이렇게 만들어진 가상 환경에서 모델을 반복 평가하고, 새로 학습한 모델이 기존 성능을 떨어뜨리지 않는지도 함께 검증한다.
24시간 쉬지 않는 개발 체계는 무엇인가
한국과 미국 개발 거점을 잇는 ‘Follow-the-Sun’ 방식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한 지역의 업무시간이 끝나면 다른 지역이 데이터 수집과 이슈 분석, 모델 개선 작업을 이어받는다. 시차를 역이용해 개발이 끊기지 않도록 만든 운영 방식이다.
SER은 어떤 상황을 자동으로 기록하나
‘스페셜 이벤트 리코더(Special Event Recorder, SER)’는 자율주행 중 발생하는 중요 상황을 자동으로 남기는 장치다. 운전자가 직접 기록을 요청하는 경우는 물론, 급가속·급제동이나 불안정한 차간 거리처럼 시스템이 이상 징후를 감지하거나 자율주행 기능이 해제되는 경우에도 관련 데이터가 자동으로 저장된다.

현대차그룹은 향후 SER이 AI가 어려워하는 상황을 더 정교하게 식별하도록 고도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데이터 유니언은 데이터 플라이휠과 어떻게 다른가
데이터 유니언(Data Union)은 특정 기업이 가진 원본 데이터를 단순히 맞바꾸는 개념이 아니다. 여러 차량과 조직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를 같은 기준으로 축적하고, 이를 AI 학습에 함께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든 데이터 생태계를 뜻한다.
현대차그룹은 우선 현대차·기아, 포티투닷, 모셔널 등 그룹 내부의 데이터 활용 효율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이후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