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차 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사람은 소방대원이다. 차체를 절단해야 할 때 어디를 잘라야 하는지, 고전압 배터리를 어떻게 차단하는지는 차종마다 다르다. 제조사 10여 곳이 같은 날 같은 장소에 차를 세워 둔 이유다.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KATRI) 주관으로 2일 부산 해운대 엘시티(LCT) 일원에서 ‘소방대원 자동차 안전구조 세미나’가 열렸다. 전국 소방구조대원 100여 명이 참석했고, 테슬라코리아가 밝힌 바에 따르면 교육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진행됐다.
참여 제작사와 투입 차량
한국토요타자동차는 이번 세미나에 한국토요타자동차를 포함해 BMW, 기아, 메르세데스-벤츠, 볼보, 아우디, 우진산전, 지커, 테슬라, 폭스바겐, 현대자동차 등 11개 제작사가 참여했다고 밝혔다. 테슬라코리아는 10개 제작사 14개 차종이 실차 교육에 투입됐다고 설명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수치가 갈리는데, 참여 브랜드와 모기업 단위를 어떻게 묶느냐의 차이로 보인다.

각 사가 내놓은 차량은 저마다 다른 구조적 특성을 가진 모델이다. 테슬라코리아는 최근 국내 신차 시장에서 월간 판매 1위를 기록 중인 모델 Y를 지원하고 전담 인력이 설명과 시연을 맡았다. 볼보자동차코리아는 순수전기 플래그십 SUV EX90을 투입했고 차체 구조 전문가가 현장에서 질의응답을 진행했다. 폭스바겐그룹코리아는 폭스바겐 ID.4와 아우디 A6 e-트론 퍼포먼스 두 대를 제공했다. 한국토요타자동차는 렉서스 순수전기차 RZ 450e 1대와 기술 교육 전문 인력을 지원했다.
판매량 상위 모델부터 대형 플래그십, 중형 SUV, 준중형 SUV까지 차급이 고르게 분포한 구성이다. 전기차는 배터리 팩 위치와 고전압 배선 경로가 플랫폼마다 달라, 차종별로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현장에서 판단하기 어렵다.
전기차 사고 시 구조 교육 내용
네 브랜드 가 공통으로 언급한 교육 항목은 세 가지다. 고전압 시스템 차단 절차, 주요 고전압 부품의 위치 확인, 인명 구조 시 차체 절단 권장 위치다.
폭스바겐그룹코리아는 참가자들이 실차로 고전압 배터리와 배선 등 주요 시스템을 살펴보고 차체 절단 권장 위치와 에어백 가스 생성기(인플레이터) 위치를 숙지했으며, 고전압 차단 절차를 직접 실습했다고 밝혔다.
한국토요타자동차는 기술 교육 담당이 고전압 시스템 관련 주의사항과 차단 방법, 주요 고전압 부품의 위치와 특성, 사고 차량 접근 및 절단 시 주의사항을 설명했다고 전했다.

볼보자동차코리아는 고전압 시스템 주요 장치의 위치와 식별 방법, 장비별 위험성과 사고 시 차단 방법, 인명 구조 시 차체 절단 위치를 단계별로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테슬라코리아는 실제 차량을 열어 고전원 차단장치 위치와 차단 요령, 사고 시 현장 조치, 에어백 및 차체 절단 권장 위치를 구조대원이 직접 확인하고 질의응답을 이어가는 방식이었다고 밝혔다.
에어백 인플레이터 위치가 반복해 언급되는 점이 눈에 띈다. 구조 과정에서 차체를 절단할 때 미전개 에어백의 가스 생성기를 건드리면 2차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내연기관차에도 해당하는 위험이지만, 전기차는 고전압 배선까지 함께 피해야 해 절단 가능 구간이 더 좁아진다.
왜 제조사가 직접 나서는가
전기차 구조 정보는 제조사만 정확히 아는 영역이다. 배터리 팩 위치와 고전압 차단 지점, 보강재가 들어간 구간은 설계 단계에서 정해지고 모델마다 바뀐다. 구조 매뉴얼이 문서로 배포돼도 실제 차량 앞에서 확인하지 않으면 현장 판단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제조사 입장에서도 이 교육은 제품 안전 신뢰도와 직결된다. 전기차 화재에 대한 불안이 구매 결정에 영향을 주는 상황에서, 사고 시 대응 체계가 갖춰져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활동이기도 하다.
폭스바겐그룹코리아는 차량 지원에 그치지 않고 고전압 차단 방법 등을 담은 안전구조 영상 자료를 별도로 제작해 배포했다. 지난해 제주 지역 소방대원 약 90명을 대상으로 한 세미나에도 폭스바겐 ID.4와 아우디 SQ6 e-트론을 지원한 바 있다.
각 사 입장
틸 셰어(Till Scheer) 폭스바겐그룹코리아 대표이사 사장은 전기차 보급이 늘어날수록 차량 구조와 고전압 시스템을 정확히 이해하고 안전하게 대처할 전문 지식이 중요해지고 있다며, 실차 교육과 기술 자료를 지속 공유해 안전한 전기차 생태계 조성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이병진 한국토요타자동차 부사장은 전기차 사고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안전하게 구조 활동을 수행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자 교육에 참여했다며, 차량과 기술 정보를 공유하는 협력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테슬라코리아는 도로 위 전기차가 늘어날수록 현장 대원들이 실제 차량 구조를 직접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소방청과 자동차안전연구원과 협력해 실차 교육 지원을 지속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볼보자동차코리아는 이번 세미나가 골든타임 확보를 위해 고전압 배터리를 포함한 전기차 구조와 특성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자리였다고 밝혔다. 볼보자동차는 1959년 3점식 안전벨트 특허를 공개했고, 1970년부터 자체 교통사고조사팀을 운영하며 5만 건 이상의 사고를 분석해 왔다. 2019년부터는 ‘E.V.A 이니셔티브’로 축적한 안전 연구 데이터를 개방하고 있다.
전기차 보급 속도에 비해 구조 현장의 대응 체계는 뒤따라가는 상황이다. 제조사별로 흩어진 차종 정보를 한자리에 모아 실차로 교육하는 방식은 그 격차를 줄이는 현실적인 방법이다. 다만 이런 세미나가 연 몇 차례 열리는 수준에 머문다면 전국 소방 인력 전체에 지식이 퍼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