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머노이드 로봇이 공장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거치는 곳이 생겼다. 실제 자동차 공장 안에 실제와 똑같은 작업장을 꾸리고, 로봇이 그곳에서 일을 배운다. 현대자동차그룹이 ‘2만5,000대’라는 배치 목표를 내건 휴머노이드 사업의 첫 관문이다.
보스턴다이나믹스는 21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안에 ‘로보틱스 메타플랜트 응용 센터(Robotics Metaplant Application Center, RMAC)’를 열고 본격 운영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6월부터 시범 운영해 온 시설이다.
RMAC의 역할과 학습 과제
RMAC은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Atlas)’가 현대자동차그룹 제조 현장에 투입되기 전 작업을 익히는 테스트베드다. 아틀라스는 실제 사업장과 동일한 환경에서 물류 작업 준비, 자동차 부품을 조립 순서에 맞게 배치하는 서열(Sequencing) 작업 등을 학습한다.

서열 작업은 자동차 공장에서 사람 손이 가장 많이 가는 공정 가운데 하나다. 한 조립 라인에 여러 사양의 차가 섞여 흐르기 때문에, 차 순서에 맞춰 알맞은 부품을 골라 정해진 위치에 놓아야 한다.
규칙은 단순하지만 부품 형태와 무게가 제각각이어서 고정형 로봇 팔로 자동화하기 어려웠던 영역이다. 사람의 체형에 맞춰 설계된 기존 작업장을 그대로 쓸 수 있다는 휴머노이드의 장점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과제다.
보스턴다이나믹스는 2030년까지 아틀라스 작업 범위를 부품 조립으로 넓히고, 이후 반복 동작이 많거나 중량물을 들어야 하는 고강도 작업으로 적용 분야를 확대할 계획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아틀라스 배치 계획
현대자동차그룹은 수년 안에 아틀라스 2만5,000대를 현대자동차·기아 글로벌 사업장에 순차 배치할 계획이다. 이와 별도로 연간 3만 대의 로봇을 생산할 수 있는 신규 생산 시설을 미국에 구축한다.

배치 목표와 생산능력을 동시에 제시한 점이 이 계획의 성격을 보여준다. 로봇을 외부에서 사다 쓰는 구조가 아니라, 자사 공장을 첫 번째 대형 고객으로 삼아 로봇 사업의 규모를 키우는 수직계열화 전략이다. 휴머노이드는 대량 생산으로 단가를 낮추기 전까지 경제성을 입증하기 어려운데, 그룹 내부 수요가 초기 물량을 보장하는 역할을 한다.
시설 확장 일정과 데이터 수집
RMAC은 내년 HMGMA 부지 안에 별도 시설을 마련해 지금의 약 10배 규모로 확장된다. 2027년에는 데이터 수집과 기타 작업을 늘려 아틀라스의 학습 과정을 고도화할 계획이다.

휴머노이드 개발 경쟁의 승부처는 하드웨어보다 학습 데이터다. 로봇 동작을 제어하는 AI 모델은 실제 환경에서 수집한 동작 데이터가 많을수록 정교해지는데, 이 데이터는 인터넷에서 긁어모을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다. 가동 중인 자동차 공장 안에 학습 시설을 두면 실제 부품, 실제 동선, 실제 작업 주기로 데이터를 쌓을 수 있다. 시설을 10배로 키운다는 것은 곧 데이터 생산량을 늘리겠다는 뜻이다.
휴머노이드 상용화 경쟁 구도
자동차 공장은 휴머노이드 업계가 공통으로 노리는 첫 상용화 무대다. 테슬라는 자체 휴머노이드 옵티머스를 개발하며 자사 공장 투입을 추진하고 있고, 피규어 AI는 BMW 미국 스파턴버그 공장에서 시험 운용을 진행해 왔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보스턴다이나믹스를 인수해 로봇 기술과 제조 현장을 한 그룹 안에 둔 구조여서, 학습 데이터 확보와 배치 규모 면에서 경쟁 구도가 다르다.

보스턴다이나믹스는 RMAC에서 자동차 생산 적용을 위한 학습과 검증을 이어가면서 다른 산업으로의 확장도 모색한다. 사족보행 로봇 스팟(Spot)과 물류 로봇 스트레치(Stretch)를 쓰는 제조, 항공우주, 반도체, 물류, 식음료, 생명과학 분야 고객과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잭 재코우스키(Zack Jackowski) 보스턴다이나믹스 최고제품·기술책임자는 현대자동차그룹과 함께 기업 규모의 피지컬 AI를 개척하고 있다며, 양사가 아틀라스의 공급망·생산·테스트·배치 역량을 최적화하는 전략을 세웠다고 밝혔다. RMAC은 로봇이 안전하고 생산적으로 일하며 인간의 잠재력을 확장하는 미래를 구현하려는 공동 비전을 강화하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블룸버그 다큐멘터리 공개
30일에는 현대자동차그룹과 보스턴다이나믹스가 블룸버그 미디어 스튜디오(Bloomberg Media Studio)와 제작한 다큐멘터리 ‘로보틱스 경쟁, 그 최전선에서(Inside the Robotics Race)’가 공개된다.
RMAC에서 아틀라스가 실제 자동차 제조 데이터로 안전성·신뢰성·성능을 검증하는 과정을 다룬다. 영상은 현대자동차그룹과 보스턴다이나믹스 홈페이지, 블룸버그 채널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