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스로이스 실버 고스트 120주년…’세계 최고의 자동차’ 별명 시작된 차

사진1 홈 오브 롤스로이스에 전시된 실버 고스트 섀시 번호 1701 https://mobilityground.com/wp-content/uploads/2026/11/사진1-홈-오브-롤스로이스에-전시된-실버-고스트-섀시-번호-1701.webp

1911년 롤스로이스 시험 차량 한 대가 변속기를 최고단에 고정한 채 런던에서 에든버러까지 달렸다. 기어를 한 번도 바꾸지 않았는데 당시 경쟁사 네이피어가 세운 연비와 속도 기록을 모두 깼다.

이 차의 별명은 ‘슬러거드(The Sluggard)’, 우리말로 게으름뱅이다. 110년 뒤인 2021년 이 차는 같은 방식으로 같은 구간을 다시 완주했다. 롤스로이스모터카는 이 차의 모델인 40/50 H.P., 일명 ‘실버 고스트’의 탄생 120주년을 26일(현지시간) 기념했다.

1906년 올림피아 모터쇼 데뷔

40/50 H.P.는 1906년 11월 런던 올림피아 모터쇼에서 처음 공개됐다. 부드러운 6기통 엔진과 높은 신뢰성으로 당시 가장 앞선 자동차 가운데 하나였다. 창업자 헨리 로이스는 기계 부품부터 정숙성, 승차감, 조작 성능까지 차의 모든 요소를 직접 다듬었다.

1925년까지 영국에서 6,173대, 미국 매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 공장에서 1,703대가 생산됐고, 1927년에는 장갑차용 섀시 10대가 따로 인도됐다.

차 한 대 이름이 차종 이름으로

‘실버 고스트’는 원래 차 한 대에만 붙은 이름이었다. 초대 영업 총괄이사 클로드 존슨은 차의 우수성을 알리려고 개별 차량에 이름을 붙였는데, 은색 도장과 은도금 장식을 한 섀시 번호 60551이 ‘실버 고스트’였다.

사진2 홈 오브 롤스로이스에 전시된 실버 고스트 섀시 번호 1701 https://mobilityground.com/wp-content/uploads/2026/11/사진1-홈-오브-롤스로이스에-전시된-실버-고스트-섀시-번호-1701.webp

이 차가 유명해지자 다른 오너들도 자기 40/50 H.P.를 실버 고스트라 부르기 시작했고, 결국 차종 전체의 이름이 됐다. 제조사가 정한 이름이 아니라 오너들이 퍼뜨린 별명이 공식 명칭처럼 굳어진 경우다.

존슨은 실버 고스트를 스코틀랜드 신뢰성 시험, 런던-에든버러 주행 시험, 스페인 그랑프리, 오스트리아 알파인 트라이얼에 내보내 성과를 쌓았다. 자동차 자체가 낯선 이동 수단이던 시절, 공개 시험에서 거둔 기록은 부유층 고객에게 품질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광고였다.

섀시 1701 ‘슬러거드’

섀시 1701은 1911년 런던-에든버러 주행 시험을 위해 영국 더비에서 만들어졌다. 시험 운전사 어니스트 하이브스가 최고단 기어로만 달려 평균 시속 19.59마일, 갤런당 24마일이 넘는 연비를 냈다.

사진5 1906년 런던 올림피아 모터쇼에서 공개된 롤스로이스 4050 H.P https://mobilityground.com/wp-content/uploads/2026/11/사진1-홈-오브-롤스로이스에-전시된-실버-고스트-섀시-번호-1701.webp

이어진 0.5마일 속도 시험에서는 시속 78.2마일을 기록했다. 같은 해 공기역학 차체를 얹고 브룩랜즈 서킷에서 시속 101.8마일을 달려, 시속 100마일(약 161km)을 넘긴 첫 롤스로이스가 됐다. 이 차는 현재 영국 굿우드 롤스로이스 본사 ‘홈 오브 롤스로이스’에 전시돼 있다.

‘세계 최고의 자동차’와 환희의 여신상

당대 언론과 오너들의 평가가 실버 고스트의 명성을 키웠다. 영국 신문 던디 크로니클은 설계 수준을 독보적이라 평했고, 잡지 컨트리 라이프는 자동차가 갖춰야 할 모든 요소의 정수라고 했다. 프랑스에서 엔진 고장 없이 3만 마일을 달린 한 오너는 풍자 잡지 펀치에 찬사가 새삼스러울 정도라는 글을 남겼다. 처음 볼리의 몬태규 경과 연관돼 쓰인 ‘세계 최고의 자동차’라는 표현은 이후 롤스로이스 브랜드의 수식어가 됐다.

롤스로이스의 상징인 환희의 여신상도 실버 고스트에서 시작했다. 볼리의 몬태규 경이 소유한 실버 고스트가 환희의 여신상을 처음 단 차다. 조각가 찰스 사이크스가 만든 이 마스코트는 1911년 롤스로이스 공식 마스코트가 됐다.

처칠부터 로렌스까지

오너 목록에는 항공 선구자 토미 솝위드, 금융가 알프레드 드 로스차일드 남작, 할랜드 앤 울프 회장 피리 경, 작곡가 휴버트 패리 경, 윈스턴 처칠, 하워드 휴스가 있다. 오페라 가수 넬리 멜바는 1911년 런던 리츠 호텔에서 섀시 1500을 인도받아 영국, 프랑스, 호주를 오갔다. 호주의 찰스 H. 앵거스는 아내가 탈 때마다 잠이 들어 차에 ‘드리머’라는 이름을 붙였다.

사진4 홈 오브 롤스로이스에 전시된 실버 고스트 섀시 번호 1701 https://mobilityground.com/wp-content/uploads/2026/11/사진1-홈-오브-롤스로이스에-전시된-실버-고스트-섀시-번호-1701.webp

1911년 인도 정부는 조지 5세 국왕과 메리 왕비의 인도 방문 행사에 의전용 란도렛 차체 실버 고스트 8대를 주문했고, 롤스로이스는 운전기사까지 보냈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섀시가 군용 장갑차로 개조됐다. ‘아라비아의 로렌스’ T. E. 로렌스는 실버 고스트 섀시 장갑차의 신뢰성을 루비보다 귀하다고 표현했다.

지금도 달리는 120년 차

생산된 지 100년이 넘었지만 상당수가 보존돼 실제 주행 중이다. 2013년에는 실버 고스트 47대가 1913년 알파인 트라이얼 1,800마일(약 2,900km) 경로를 재현했다. 섀시 1701과 당시 대회에 출전했던 차량도 포함됐다.

앤드류 볼 롤스로이스모터카 기업 관계·헤리티지 총괄은 실버 고스트가 정교함과 신뢰성, 탁월함의 명성을 세운 모델이며, 이를 경험한 사람들이 높인 기대가 120년이 지난 지금도 롤스로이스의 기준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