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터리 제조사의 경쟁이 셀 생산능력에서 원재료 조달 구조로 옮겨가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스맥오버 리튬(Smackover Lithium)과 탄산리튬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9월 1일 밝혔다.
스맥오버 리튬은 미국 리튬 전문 개발업체 스탠다드 리튬(Standard Lithium)과 노르웨이 국영 에너지 기업 에퀴노르(Equinor)가 설립한 합작법인이다.
계약에 따라 LG에너지솔루션은 스맥오버 리튬이 본격 양산에 들어가는 2029년부터 10년간 총 8만 톤 규모의 탄산리튬을 공급받는다. 한 번 충전에 500km 이상 주행 가능한 고성능 전기차 약 180만 대를 만들 수 있는 물량이다.
남서부 아칸소 프로젝트와 직접리튬추출(DLE) 공법 적용
공급 물량은 스맥오버 리튬이 미국 아칸소주에서 추진하는 ‘남서부 아칸소 프로젝트’에서 생산된다. 이 프로젝트에는 직접리튬추출(DLE, Direct Lithium Extraction) 기술이 적용돼 탄소배출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고품질 탄산리튬을 뽑아낸다.
직접리튬추출은 기존 염호 증발 방식과 근본적으로 다른 공정이다. 남미 염호에서 통용되는 증발지 방식은 리튬을 농축하기까지 12개월에서 24개월이 걸리고 광범위한 부지와 대량의 물을 소모한다.
직접리튬추출은 흡착제나 이온교환 소재로 염수에서 리튬만 선택적으로 걸러내는 방식이어서 처리 시간이 수 시간 단위로 줄고, 사용한 염수를 다시 지층으로 되돌릴 수 있다. 아칸소주 스맥오버 지층은 오랜 기간 브롬 생산에 활용돼 온 염수 자원 지대로, 기존 시추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프로젝트의 조건이 된다.
탄산리튬 수요 급증과 북미 에너지저장장치 시장의 구조 변화
이번 계약은 북미 지역의 전력 수요 증가로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리튬인산철(LFP) 등 주요 배터리용 양극재의 현지 공급망 확보가 과제로 떠오른 상황에서 추진됐다. 급증하는 탄산리튬 수요에 선제 대응한다는 목적이다.

탄산리튬은 리튬인산철과 삼원계 배터리의 핵심 원재료다. 고성능 삼원계(하이니켈) 배터리에 주로 쓰이는 수산화리튬과 함께 전기차 및 에너지 전환 시장을 이끄는 핵심 광물로 꼽힌다. 두 물질의 수요 구조는 배터리 화학 구성에 따라 갈린다.
하이니켈 중심 시장에서는 수산화리튬이, 리튬인산철 비중이 커지는 시장에서는 탄산리튬이 필요하다. 데이터센터 확산으로 전력 수요가 늘고 이를 뒷받침할 에너지저장장치 설치가 확대되면서, 원가 경쟁력이 앞서는 리튬인산철 수요가 빠르게 커지는 국면이다. LG에너지솔루션이 수산화리튬이 아닌 탄산리튬 물량을 10년 단위로 묶어둔 배경이 여기에 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 수혜 요건과 완결형 공급망 체계
미국 현지에서 친환경 공법으로 생산된 원료를 확보하면서 LG에너지솔루션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수혜 요건을 충족하게 됐다. 북미 시장 내 공급망 경쟁력과 ESG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하는 효과도 따라온다.
배터리 원재료의 원산지는 세액공제 수령 여부를 가르는 조건이다. 셀을 미국에서 만들어도 광물 조달처가 요건을 벗어나면 혜택이 축소된다. 미국 내에서 추출·가공된 리튬을 장기 계약으로 확보하는 것은 제도 리스크를 줄이는 가장 직접적인 수단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현재 북미에서 8개 생산시설을 구축·운영 중이며, 이번 계약으로 현지 원재료 조달부터 배터리 생산으로 이어지는 완결형 공급망 체계를 갖추게 됐다.
데이비드 박(David Park) 스탠다드 리튬 CEO는 세계적인 배터리 제조사인 LG에너지솔루션과 계약을 체결하게 돼 뜻깊다며, 미국산 탄산리튬을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하게 공급해 양사가 함께 성장하는 파트너십을 구축해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강열 LG에너지솔루션 구매센터장 전무는 이번 파트너십이 북미 전략 시장에서 친환경적으로 생산된 핵심 광물을 확보해 공급망 안정성을 높인 성과라며, 미국 현지 생산과 원재료 조달을 통해 경쟁력 있고 지속가능한 제품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칠레 SQM·호주 라이온타운으로 이어진 원재료 파트너십 구도
LG에너지솔루션은 주요 광물 생산국의 선도 기업들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확대하며 원재료 공급망을 구축해 왔다. 세계 최대 리튬 생산업체인 칠레 SQM과 10만 톤 규모의 수산화·탄산리튬 장기 공급 계약을 맺었고, 호주 라이온타운(Liontown)으로부터 175만 톤 규모의 리튬 정광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칠레와 호주, 그리고 이번 미국까지 이어지는 조달처 배치는 지역 분산 그 자체가 목적이다. 리튬 가격은 2022년 정점 이후 급락과 반등을 반복하며 변동성이 큰 품목으로 남아 있고, 특정 국가의 자원 정책 변화에 노출되는 위험도 상존한다.
생산 지역과 계약 형태를 나눠 쥐는 방식은 가격 변동과 정책 리스크를 동시에 분산한다. 2029년 양산 시점을 기준으로 한 이번 계약은 그 분산 구도에 미국 축을 추가하는 결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