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아가 IAA 트랜스포테이션 2026에서 공개한 PV7의 자료에는 짧지만 무게가 다른 문장이 하나 섞여 있다. 글로벌 시장에 23종의 파생 및 컨버전 모델을 순차적으로 전개하겠다는 대목이다.
통상 완성차 업체가 한 모델에서 뽑아내는 바디 사양이 서너 개 수준이라는 걸 감안하면 적은 숫자가 아니다. 이걸 가능하게 만드는 장치로 기아가 내세운 것이 ‘플렉시블 바디 시스템(Flexible Body System)’이다.
플렉시블 바디 시스템은 무엇을 바꾸나
기아 설명에 따르면 이 시스템은 차세대 바디 개발·제조 기술이다. PV7의 사이드아우터와 루프 패널 등 주요 차체 부위에 적용해, 축간거리와 전장·전고, 실내 구성 등을 다양화한 바디 사양을 유연하게 만들어낸다.

핵심은 적용 부위에 있다. 사이드아우터는 차체 측면 전체를 덮는 대형 패널이고, 루프 패널은 지붕을 이루는 부위다. 이 두 곳은 차량의 길이와 높이를 결정하는 뼈대에 해당한다. 통상 이 부위를 바꾸려면 전용 금형과 생산 라인이 따로 필요해, 파생 모델을 늘릴수록 개발비와 설비 투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다. 기아가 이 지점을 겨냥해 기술을 개발했다는 얘기다.
기존 특장차 개조 방식과 무엇이 다른가
지금까지 상용 밴 시장에서 파생 모델은 대부분 완성된 차를 뜯어 고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기본 모델을 출고한 뒤 특장 업체가 지붕을 높이거나 뒤를 잘라내 새 구조물을 얹는 식이다. 이 방식은 유연하긴 하지만 두 가지 부담이 따른다. 개조 과정에서 원래 차체의 강성이나 안전 설계가 흔들릴 수 있고, 개조 비용과 시간이 고객에게 전가된다.

플렉시블 바디 시스템은 이 작업을 개조 단계가 아니라 설계·제조 단계로 끌어올린 접근이다. 제조사가 처음부터 여러 제원의 바디를 생산할 수 있도록 만들어두면, 특장 업체는 구조 변경이 아니라 용도별 의장 작업에 집중할 수 있다. 기아가 PV7을 용도와 차체 제원에 따라 카고 컴팩트·롱·하이루프, 패신저 컴팩트·롱으로 나누고, 여기에 특장차 개발용 샤시캡 모델까지 별도로 두겠다고 밝힌 배경이다.
왜 이게 PBV 사업의 승부처인가
PBV(Platform Beyond Vehicle)는 이름 그대로 차량을 플랫폼으로 삼아 고객 업무에 맞춰 변형하는 사업 모델이다. 이 구조에서 경쟁력을 가르는 건 단일 모델의 완성도가 아니라 얼마나 다양한 변형을 얼마나 싸게, 얼마나 빨리 내놓을 수 있느냐다. 고객 요구가 세분화될수록 필요한 바디 사양은 늘어나는데, 기존 방식으로는 수요가 일정 규모를 넘지 않으면 수지가 맞지 않는다.

기아가 파생·컨버전 모델 23종이라는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기술을 전제로 한 계산으로 보인다. 바디 제조 단계의 유연성이 확보되면, 소량 수요 모델도 사업성 검토 대상에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파트너 생태계는 어떻게 꾸리나
기아는 기술만 준비한 게 아니다. 박람회 기간 동안 국내외 31개 특장 업체를 별도로 초청해 ‘2026 글로벌 PBV 컨버전 파트너스 데이’를 연다. PBV 컨버전 파트너십 전략의 일환으로 매년 진행하는 행사로, 올해는 PV7에 대한 상세 정보를 공유하고 기아와 외부 생태계의 네트워크를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플렉시블 바디 시스템이 제조사 쪽 유연성을 담당한다면, 이 파트너 네트워크는 그 유연성을 실제 시장 수요와 연결하는 통로다. 아무리 다양한 바디를 만들 수 있어도 그걸 어떤 용도로 어떻게 꾸밀지 아는 건 결국 현장의 특장 업체 몫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