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회장이 24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샌프란시스코 AI 서밋(San Francisco AI Summit)’에 참석해 현대차그룹의 피지컬 AI(Physical AI) 비전과 전략을 공개했다. 이날 행사에는 국내 주요 기업 경영진과 미국 빅테크 기업인, 스타트업 관계자, 학생 등 약 150명이 참석했다.
정의선 회장은 이 자리에서 현대차그룹이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의 경계를 넘어 자율주행, 로보틱스, AI 팩토리(AI Defined Factory) 등 피지컬 AI 솔루션 기업으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개별 디바이스에서 도시 단위까지 확장되는 지능화 구상
현대차그룹이 지향하는 피지컬 AI 비전은 자동차와 로봇 등 개별 디바이스의 지능화에서 출발해, 전 공정을 AI로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AI 팩토리 같은 특정 공간의 지능화를 거쳐, 궁극적으로는 도시 단위 통합 지능화로 확장되는 구조다.
정의선 회장은 현대차그룹이 추구하는 피지컬 AI가 도시 인프라 전체가 유기적으로 연결·운영되는 도시 레벨의 통합 지능화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동차 제조사가 개별 제품의 지능화를 넘어 도시 인프라 운영까지 비전의 범위를 넓힌 것은, 완성차 기업의 사업 정체성을 모빌리티 제조업에서 인프라 솔루션 기업으로 재정의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정의선 회장은 현대차그룹이 이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경쟁력이다. 오랜 기간 축적한 글로벌 제조 거점 운영 경험과 품질 관리 역량, 공급망 운영 노하우는 AI 기술을 실제 제품과 공정, 서비스에 적용하고 검증 및 확산하는 기반이 된다.

둘째는 선도적인 로보틱스 역량이다. 보스턴다이나믹스의 사족 보행로봇 ‘스팟’과 지능형 물류 로봇 ‘스트레치’, 로보틱스랩의 차세대 모바일 로봇 플랫폼 ‘모베드’ 등이 현장 활용성과 기술 경쟁력을 갖춘 대표 플랫폼으로 꼽힌다.
특히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는 제조와 물류, 모빌리티 영역에서 인간과 협업하는 피지컬 AI의 대표 사례로 언급됐다.
셋째는 데이터 플라이휠 구조의 확보다. 제조 현장, 차량, 물류, 로봇 실증 등 실제 환경에서 축적되는 데이터를 AI 고도화에 활용하고, 개선된 알고리즘을 다시 현장에 적용해 성능을 높이는 선순환 구조가 피지컬 AI 성능을 좌우할 핵심 경쟁력으로 제시됐다.
엔비디아·웨이모·구글 딥마인드와의 3대 협력 전략
정의선 회장은 현대차그룹의 제조 역량, 로보틱스 기술, 데이터와 빅테크의 AI 인프라·알고리즘이 결합되면 피지컬 AI 시대의 새로운 혁신 생태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밝히며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공개했다.
엔비디아와는 블랙웰 GPU 5만 장 공급 계약을 비롯해, 지난해 체결한 ‘국내 피지컬 AI 역량 고도화 MOU’를 계기로 현대차그룹 ‘로봇 어플리케이션 센터’와 엔비디아 ‘AI 기술 센터(AI Technology Center)’ 설립 등 국내 피지컬 AI 인프라 강화와 인재 양성을 위한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제조 디지털 트윈 분야에서는 엔비디아 플랫폼을 활용해 제조 현장을 정교하게 가상화하고 공정 설계·운영을 최적화하며, 엔비디아의 차량용 반도체와 센서, 아키텍처를 현대차그룹의 차량 플랫폼과 결합해 자율주행 기술도 고도화하고 있다.

웨이모와는 2024년 전략적 파트너십 체결 이후 자율주행 파운드리 사업을 시작으로 협력을 확대해 왔다.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에서는 조향, 제동, 전력 등 하드웨어 이중화와 강화된 기능 안전, 사이버 보안 등 자율주행 특화사양이 적용된 아이오닉 5를 생산해 웨이모에 공급할 예정이다.
보스턴다이나믹스는 구글 딥마인드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미래 휴머노이드 개발을 가속화하고 있다.
로봇이 실제 환경에서 복잡한 작업을 수행하려면 하드웨어 성능뿐 아니라 고도화된 AI 모델과 학습 체계가 필요한 만큼, 이번 파트너십을 통해 보스턴다이나믹스 로봇은 더 높은 자율성으로 복잡한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를 바탕으로 현대차그룹은 2028년까지 미국 내 연간 3만 대 규모의 로봇 생산 시스템을 구축하고, 차세대 전동식 아틀라스 개발형 모델을 HMGMA 등 생산 거점에 우선 투입한 뒤 단계적으로 도입을 확대할 방침이다.
로봇 레퍼런스 플랫폼과 국내 대규모 투자
정의선 회장은 빅테크와의 협력 결과가 국내 피지컬 AI 산업 성장의 밑거름으로 이어져야 한다며, 국내 로봇·AI 기술 고도화를 위한 오픈 생태계 조성 계획도 밝혔다.
현대차그룹과 엔비디아가 공동 구축하는 ‘로봇 레퍼런스 플랫폼(Robot Reference Platform)’은 대학, 연구소, 스타트업에 연구용 로봇 모델을 제공해 기술 혁신과 인재 양성을 뒷받침하는 개방형 생태계 조성이 목적이다.
사업화와 검증 기반이 부족했던 국내 연구 기관과 스타트업이 표준화된 하드웨어-소프트웨어 환경에서 피지컬 AI 기술을 개발하고 실증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 투자도 병행된다. 현대차그룹은 전북 새만금 지역에 약 9조 원 규모의 AI 데이터센터, 로봇 제조 클러스터, 수전해 플랜트, AI 수소 시티 등 ‘새만금 AI 밸리’를 구축하고 있다. 로봇 제조 클러스터는 자체 로봇 생산뿐 아니라 제조 노하우가 부족한 중소기업 제품을 위탁 생산하는 로봇 파운드리 역할도 맡는다.
영남권에는 10년간 총 42조 원 규모를 투자해 AI 기반 제조 허브, 미래 항공·우주, 지속가능한 에너지 인프라가 집약된 첨단산업 거점을 육성한다. 글로벌 빅테크와의 협력을 통해 확보한 기술을 국내 산업 생태계와 지역 투자로 연결하는 구조는, 해외 기술 협력이 국내 일자리와 산업 경쟁력으로 이어지도록 설계된 전략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