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이 겹치는 건 우연이겠지만, 겹치는 게 이름만은 아니다. 볼보 ES90과 렉서스 ES350e는 준대형 전기 세단이라는 체급도, 7천만 원대라는 가격 구간도, 올가을 인도 개시라는 시점도 나란히 놓인다.
수입 전기 세단 시장에서 ‘ES 대전’이라 부를 만한 판이 짜였다. 두 차가 각자 어떤 답을 들고 나왔는지 뜯어봤다.
40년 된 이름과 새로 지은 이름

출발선부터 다르다. ES는 렉서스가 브랜드를 세운 1980년대 말부터 굴려온 간판이다. 8세대로 세대를 갈면서 하이브리드와 순수 전기를 한 지붕 아래 두는 구조로 바뀌었고, 그중 전기 쪽 답안이 ES350e다.

볼보 ES90은 반대다. 전기 세단에 붙일 이름 체계를 새로 만들고 그 첫 타자로 내놓은 차다. S90이 맡던 자리를 전동화로 넘겨받는 위치에 있다.
한쪽은 오래 쌓은 이름을 전기차로 옮겨왔고, 다른 쪽은 전기차를 위해 이름표를 새로 팠다. 이 차이가 차의 성격까지 갈라놓는다.
값, 한쪽은 공개 다른 쪽은 미공개
볼보는 가격표를 이미 펼쳤다. 세제 혜택을 전제로 싱글 모터 익스텐디드 레인지 플러스가 7,294만 원이다. 같은 파워트레인의 울트라는 8,055만 원, 사륜 트윈 모터는 플러스 7,960만 원과 울트라 8,741만 원으로 이어지고, 꼭대기의 퍼포먼스 울트라가 9,541만 원이다.

볼보가 이번에 가장 목소리를 높인 지점도 값이다. 해외 주요 시장 대비 5,000만 원가량 낮게 잡았고, 같은 매장에서 파는 S90 플러그인하이브리드보다도 최대 1,800만 원 저렴하다는 게 회사 주장이다. 사전계약은 출시 당일에 1,000대 선을 넘겼다.
렉서스는 아직 국내 값을 꺼내지 않았다. 미국 시장 가격이 먼저 나오면서 업계에서는 국내 판매가도 7천만 원대에 형성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관측대로라면 두 차는 같은 칸에서 정면으로 부딪힌다. 다만 확정 전 수치라 실제 값은 달라질 수 있다.

보조금을 얹으면 셈법이 또 꼬인다. 올해 기준으로 차량 기본가가 5,300만 원 아래면 전액, 8,500만 원 아래면 절반, 그 위로는 지급 대상에서 빠진다. ES90은 아래 두 트림이 절반 구간이고 울트라급은 경계선 밖이다. 렉서스가 7천만 원대 초중반에 들어오면 절반 구간을 잡는다.
주행거리, 큰 숫자와 확정된 숫자
승부처는 여기다. ES90은 유럽 WLTP 잣대로 싱글 모터가 662㎞, 트윈 모터가 706㎞를 찍었다. 국내 인증 결과는 아직이다.

렉서스는 이 관문을 먼저 통과했다. 렉서스 ES350e는 상온에서 복합 478㎞를 받았고, 구간별로는 도심 503㎞와 고속 448㎞다. 기온이 낮을 때는 복합 379㎞로 떨어지며 도심은 350㎞, 고속은 414㎞로 측정됐다. 배터리는 74.7kWh가 실린다.

숫자만 보면 볼보 쪽이 압도적이다. 그러나 두 수치는 서로 다른 자를 댄 결과라 나란히 세울 수 없다. WLTP가 국내 인증보다 후하게 나오는 경향을 감안하면, ES90의 국내 인증치가 나와야 같은 조건의 비교가 성립한다. 지금 시점에서 국내 기준으로 확정된 건 렉서스의 478㎞뿐이다.
충전과 구동, 800V와 전륜의 갈림길
기술 구성은 두 차가 가장 크게 엇갈리는 대목이다. ES90은 전기차 전용 SPA2 뼈대에 800V 고전압 체계를 얹었다. 볼보로서는 처음이다.

350㎾급 급속 충전을 소화해 배터리를 10%에서 80%까지 22분 안팎에 채우고, 10분 충전으로 300㎞ 분량을 확보한다는 게 회사 설명이다. 배터리는 92kWh와 106kWh 두 가지다.
ES350e는 직류 급속으로 10%에서 80%까지 30분이 걸리고, 교류 충전은 11kW급을 차에 내장했다. 구동은 앞바퀴를 굴리는 단일 모터 방식이며 최고출력은 227마력이다. 뼈대는 TNGA-K를 쓰고 여기에 일체형 eAxle을 얹었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는 8.2초가 걸린다.

충전 속도는 800V를 택한 볼보의 몫이다. 구동 방식도 방향이 다르다. 볼보는 후륜을 기본으로 사륜 트윈 모터까지 고를 수 있는 반면, 렉서스는 전륜 단일 모터로 간결하게 간다. 가속을 앞세운 차와 효율·정숙에 무게를 둔 차의 차이가 설계 단계부터 드러난다.
실루엣, 뒤로 흐르는 리프트백과 다듬은 세단
ES90의 몸집은 길이 5,000㎜, 폭 1,940㎜, 높이 1,545㎜, 축간거리 3,102㎜다. 같은 급 세단보다 차체와 앉은 위치를 올려 시야를 확보하면서, 뒤쪽으로 완만하게 떨어지는 리프트백 형태를 그렸다. 짐칸은 최대 1,445L까지 열린다. 세단의 자세를 유지하면서 해치백식 개구부를 얹은 절충이다.

렉서스는 8세대 ES에 LF-ZC 콘셉트의 조형을 가져와 ‘스핀들 보디’라는 새 형태를 입혔다. 그릴을 앞세우던 기존 방식에서 손을 떼고, 전기차에 맞춰 공기 흐름을 앞세운 설계로 방향을 틀었다. 바닥에 깔린 배터리 탓에 생기는 높이감은 별도 설계로 눌렀고, 전동화 모델의 세련미와 세단다운 비율을 함께 잡는 데 초점을 뒀다.
한쪽은 실용을 끌어올린 리프트백, 다른 쪽은 전통 세단 실루엣의 정제다. 취향의 문제지 우열을 가릴 항목은 아니다.
편의와 안전, 손에 잡히는 장비와 쌓아온 신뢰
ES90은 실내 완성도로 밀어붙인다. 파노라믹 글라스 루프가 기본이고, 윗급에는 버튼으로 빛 투과율을 바꾸는 일렉트로크로믹 루프가 들어간다. 4존 자동 공조와 프리미엄 오디오도 얹었다.

소프트웨어는 차세대 플랫폼 ‘휴긴 코어’가 이 차에 처음 실렸다. 엔비디아와 퀄컴 기반 연산 장치를 묶었고, 카메라 다섯과 레이더 다섯, 초음파 센서 열둘이 주변을 살핀다. 보증은 일반 부품 5년 10만㎞, 고전압 배터리 8년 16만㎞다.

ES350e에는 새로 손본 주행 안전 체계 LSS+ 4.0이 들어간다. 여기에 렉서스가 오래 다져온 정숙성과 승차감, 국내에 촘촘히 깔린 서비스망, 그리고 중고 시세 방어력이 실질적인 무기다. 새 기술의 화려함보다 검증된 만듦새에 값을 치르는 소비자층이 이 브랜드의 기반이다.
왕좌를 가를 세 가지
이 승부의 관건은 셋으로 좁혀진다.

첫째, 렉서스가 확정할 국내 값이다. 7천만 원대 초반에 들어오면 ES90 하위 트림과 정면으로 맞붙고, 후반으로 올라가면 겨루는 상대가 달라진다.
둘째, 볼보의 국내 인증 주행거리다. WLTP 706㎞가 국내 기준에서 얼마나 유지되느냐에 따라 렉서스의 478㎞와 벌어진 간격이 정해진다.

셋째, 소비자가 무엇에 값을 매기느냐다. 충전 속도와 주행거리, 최신 소프트웨어를 앞자리에 두면 볼보 쪽이고, 정숙성과 브랜드 신뢰, 검증된 서비스 경험을 우선하면 렉서스 쪽이다.
이름이 같다고 같은 차는 아니다. 올가을 두 ES가 나란히 인도를 시작하면, 수입 전기 세단 시장이 어떤 가치에 지갑을 여는지가 판매 숫자로 드러날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