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년간 155억 달러.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인도 총리에게 제시한 숫자다. 정의선 회장은 13일 현지시간 인도 뉴델리 총리 관저에서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 총리와 개별 면담을 갖고 현대자동차그룹의 현지 성장 전략과 인도 모빌리티 산업 발전 방안을 논의했다.
면담 내용
정의선 회장은 현대자동차그룹이 1996년 인도 진출 이후 30년간 인도와 함께 성장해 왔다며 인도 정부의 관심과 지원에 감사를 표했다.
그는 푸네 공장 가동으로 연 140만 대 생산 체제를 확보했으며, 안정적인 생산으로 인도 자동차 시장의 성장에 대응하고 신흥국 수출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인도를 현대자동차그룹의 미래 성장과 신흥국 시장 확대를 견인할 전략 국가로 규정하며 올해부터 7년간 약 155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의선 회장과 모디 총리의 만남은 이번이 여덟 번째다. 지난 4월 한국 대통령의 인도 국빈 방문 당시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해 모디 총리 오찬에 참석했고, 2024년 현대자동차 인도법인의 현지 증시 상장을 계기로 개별 면담을 가졌다. 2015년 모디 총리 방한과 한-인도 비즈니스 서밋, 인도 MOVE 모빌리티 서밋에서도 만났다.

모디 총리는 2014년 5월 취임 이후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를 앞세워 인도를 세계 6위 경제 대국으로 성장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후 ‘선진 인도 2047(Viksit Bharat 2047)’을 국가 비전으로 제시해 미래 산업 육성과 제조 경쟁력 제고에 주력하고 있으며, 2024년 3연임에 성공해 3기 내각을 이끌고 있다.
155억 달러 투자의 구성
투자는 신공장 건설과 R&D 역량 강화, 현지 공급망 경쟁력 제고, 미래 신기술 개발로 나뉜다.
R&D 분야에서는 현지 연구개발 인프라를 확대하고 인도 우수 인재를 확보해 역량을 끌어올린다. 인도 고객에 최적화된 상품과 기술을 빠르게 개발해 공급하겠다는 목표다.

미래 모빌리티와 신기술 분야에서는 현지 기업 및 스타트업과의 협력을 넓힌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인도 TVS 모터 컴퍼니와 협업해 전기 3륜차(i3W) 시제품 개발을 완료했으며 2027년 말 상용화를 목표로 사업을 추진 중이다. 신규 모빌리티 서비스와 자동차 금융, 전기차 충전 인프라, 폐차 재활용 등 미래 사업 기회도 모색한다.
투자를 체계적으로 집행하기 위해 인도 내 투자 전문 법인 설립을 추진한다. 이 법인은 그룹 차원의 미래 투자 과제를 발굴하고 조율, 집행하는 역할을 맡는다. R&D 인프라와 미래 신기술, 산업 생태계 전반에 대한 투자를 조율하고 현지 파트너에 대한 전략적 투자로 우수 협력사를 발굴하는 플랫폼 기능도 수행한다.
투자 전문 법인을 따로 세우는 구성이 이번 발표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대목이다. 완성차 생산 법인이 집행하는 설비 투자와 달리, 스타트업 지분 참여나 충전 인프라, 폐차 재활용 같은 영역은 성격이 다르다. 7년에 걸친 투자를 생산 법인 예산 안에서 돌리지 않겠다는 선택이다.
전기 3륜차도 같은 맥락이다. 인도의 3륜 오토릭샤 시장은 연간 수십만 대 규모의 독자 영역이고, 승용차 기술로 바로 넘어갈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현지 1위 이륜차 업체와 손잡은 방식이 그 간극을 메운다.
인도 시장의 전략적 가치
인도는 약 14억 7,000만 명의 인구를 보유한 경제 대국이다. 지난 9월 OECD가 발표한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에서 7.1%를 기록했고, IMF가 10월 발표한 전망에서도 올해와 내년 각각 7% 성장해 주요국 가운데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됐다.
자동차 산업은 중국과 미국에 이어 세계 3위다. 전체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승용차 시장은 지난해 457만 대에서 올해 525만 대로 15% 가까이 늘어날 전망이다.

수입 완성차 관세는 70~110%에 달해 현지 생산 기반 확보가 필수적이다. 중동과 아프리카 등 신흥 성장 국가와 인접해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지역을 겨냥한 수출 거점으로서 지리적 이점도 크다. 낮은 제조 원가 역시 제조 경쟁력 확보에 유리한 조건이다.
관세 70~110%라는 숫자가 이 투자의 성격을 설명한다. 인도는 차를 수출해서 파는 시장이 아니라 들어가서 만들어야 하는 시장이다. 그리고 한 번 공장을 세우면 그 공장이 중동과 아프리카로 나가는 발판이 된다. 155억 달러는 인도 내수만 보고 책정한 금액이 아니다.
생산 기반과 판매 실적
현대자동차그룹은 인도에서 첸나이 현대자동차 1·2공장과 푸네 현대자동차 3공장, 아난타푸르 기아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인도 판매는 현대자동차 57만 1,878대, 기아 28만 286대 등 총 85만 2,164대다. 시장 점유율 18.7%로 인도 내 2위를 지키고 있다.
사회공헌 활동
현대자동차그룹은 장애인의 사회 참여와 자립을 지원하는 ‘사마르스(Samarth)’ 캠페인을 운영한다. 장애인 운동선수의 훈련을 위한 재정 지원과 인프라를 제공하고 장애인 인식 개선 영상물을 제작, 배포한다.

교육 분야에서는 현대자동차 인도법인이 타밀나두주 첸나이에 직업기술학교 HATS(Hyundai Academy for Technical Skills)를 설립해 운영할 계획이다. 자동차 생산과 정비, 스마트 팩토리, 건설, 산업안전 등의 직업기술 교육을 제공하며 연간 약 1만 3,000명을 교육한다는 구상이다.
현대자동차와 기아, 현대모비스 등 주요 그룹사가 2016년부터 2025년까지 조성한 인도 누적 사회공헌 기금은 약 1억 1,000만 달러다.
연간 1만 3,000명 규모의 직업기술학교는 사회공헌과 공급망 전략이 겹치는 지점이다. 현지 부품 조달과 공장 운영을 확대하려면 숙련 인력이 필요하고, 그 인력을 직접 길러내는 구조다. 모디 총리의 메이크 인 인디아 기조와도 맞물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