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산 전기버스가 북아프리카 도로에 처음 오른다. 사막 기후의 관광도시 마라케시가 무대이고, 판매가 아닌 공적개발원조가 통로다.
현대자동차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함께 모로코 마라케시 시에 전기버스 ‘일렉시티(ELEC CITY)’ 15대를 공급한다고 밝혔다. 현대자동차는 21일 전북 완주군 전주공장에서 ‘모로코 마라케시 시 친환경 전기버스 교통체계 구축사업 전기버스 국내 전달식’을 열었다. 행사에는 이승민 현대자동차 상용상품실 상무, 도영아 한국국제협력단 지역사업2본부 이사, 샤픽 라샤디(Chafik Rachadi) 주한 모로코 대사 등이 참석했다.
ODA 사업 구조와 공급 범위
이번 공급은 한국국제협력단이 마라케시 시와 추진하는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의 일환이다. 한국국제협력단은 일렉시티 15대와 급속충전기 등 관련 기자재를 제공하고, 전기버스 운영과 유지관리 역량을 높이기 위한 현지 교육과 기술협력도 함께 진행한다.
차량만 보내지 않고 충전 인프라와 정비 교육을 묶었다는 점이 사업의 핵심이다. 전기버스 도입이 처음인 도시에서 충전기와 정비 인력이 없으면 차량은 몇 달 안에 차고지에 멈춘다. 개발도상국 친환경 교통 원조가 실패하는 전형적인 경로를 초기 설계에서 막아둔 구성이다.
일렉시티는 모로코에 공급되는 첫 국내 생산 전기버스다. 차량은 마라케시 주요 관광지구의 시내버스 노선에 투입돼 대중교통 수요에 대응하고 도심 대기오염을 줄이는 역할을 맡는다.
모로코의 탄소 감축 목표와 교통 전환
모로코 정부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배출 전망치(BAU) 대비 최대 45.5% 줄이고,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목표 아래 에너지·산업·교통 분야의 저탄소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국제협력단은 이 정책 방향에 맞춰 마라케시 시의 친환경 대중교통 전환과 교통 부문 탄소 감축을 지원한다.
모로코는 2030 FIFA 월드컵 공동 개최국으로 주요 도시의 교통 인프라 정비가 이어지고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관광객 유입이 많은 마라케시에서 대중교통 전동화는 환경 정책이자 도시 이미지 전략이다.
신흥시장 전기버스 경쟁과 현대자동차의 접근
신흥시장 전기버스는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제조사들이 빠르게 점유율을 넓혀 온 영역이다. 국산 전기버스가 가격만으로 이 시장에 진입하기는 쉽지 않다. ODA를 통한 공급은 수출 계약보다 규모는 작지만, 현지 운행 실적과 정비 체계를 먼저 확보할 수 있는 경로다. 공공 발주 성격이 강한 버스 시장에서 레퍼런스 노선 하나는 이후 입찰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마라케시는 여름철 기온이 매우 높은 지역이어서 배터리 열관리와 냉방 부하 대응이 실제 운행에서 검증되는 환경이다. 현대자동차가 다양한 지역의 운행 환경과 수요에 맞는 친환경 상용 모빌리티 활용 가능성을 모색하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고온 지역 운행 데이터는 중동과 북아프리카 시장 확대를 위한 기술 자산이 된다.
전달 일정
이번 국내 전달식은 15대 가운데 먼저 생산한 2대의 제작 완료를 기념해 마련됐다. 현대자동차는 나머지 차량 생산과 선적을 거쳐 15대 전량을 마라케시 시에 공급하고, 2027년 1분기 현지 전달 행사를 열 계획이다.

박철연 현대자동차 글로벌상용&LCV사업본부장은 이번 사업이 전기버스로 대중교통 전동화 가능성을 넓히는 사례가 될 것이라며, 다양한 지역의 운행 환경에 맞는 친환경 상용 모빌리티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도영아 한국국제협력단 지역사업2본부 이사는 이번 지원으로 모로코 내 친환경 대중교통이 확산되기를 바란다며, 일렉시티 공급을 계기로 국산 전기차가 모로코와 북아프리카에 더 활발히 진출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샤픽 라샤디 주한 모로코 대사는 제22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2) 개최지이자 모로코의 경제·문화 중심지인 마라케시에 전기버스가 도입되는 것은 상징적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업이 모로코의 탄소중립 목표와 시민 교통 편의에 기여하고 양국 간 지속가능한 도시 모빌리티 협력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