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용 준중형 SUV 광고에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자가 소환됐다. 현대차는 신형 투싼 출시에 맞춰 SF 작가 필립 K. 딕의 작품 세계에서 영감을 받은 브랜드 캠페인을 선보인다고 18일 밝혔다. 21일 공식 SNS에 포스터를, 23일에는 디지털 필름을 공개한다.
필립 K. 딕은 어떤 작가인가
필립 K. 딕은 1982년 세상을 떠난 미국 SF 작가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원작 단편을 썼다.
그의 소설을 관통하는 질문은 대체로 같다. 기계가 인간을 얼마나 닮을 수 있는가, 그리고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 그가 그린 미래는 밝지 않았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는 세계였다. 자동차 광고가 흔히 기대는 ‘약속된 밝은 미래’와는 결이 다른 작가다.
왜 이 작가를 골랐을까
신형 투싼의 상품 메시지에서 연결고리가 보인다. 이 차는 현대차 SUV 최초로 대형 언어 모델 기반 AI 에이전트 ‘글레오 AI’를 탑재했다.

글레오 AI는 연속 대화를 이해하고 감성적인 대화까지 지원한다고 현대차는 설명한다. 차 안에 사람처럼 말하는 기계가 들어온 셈이다.
기계와 인간의 관계를 평생 파고든 작가만큼 이 메시지에 어울리는 레퍼런스는 드물다. 현대차는 보도자료에서 이번 신형을 디자인, 공간, 전동화, 디지털 기술 전 영역의 혁신이라고 정리했는데, 캠페인은 그중 디지털, 더 좁게는 AI에 방점을 찍은 것으로 읽힌다.
외관 디자인과의 접점도 있다. 신형 투싼은 수직형 H-엣지 라이팅 주간주행등과 수평형 슬림 센터 램프, 투명 렌즈 안에 패턴을 넣은 프리즘 리어 램프를 달았다. 빛의 선으로 차의 인상을 만드는 방식은 ‘블레이드 러너’가 남긴 사이버펑크 미학과 시각적으로 맞닿는다.
신형 투싼 캠페인에서 무엇을 봐야 하나
필립 K. 딕을 가져오는 선택에는 위험도 따른다. 그의 세계는 디스토피아다. 광고가 그 어두움을 어디까지 차용하느냐에 따라 메시지가 흔들릴 수 있다. ‘기계가 인간을 대신한다’로 읽히면 가족 SUV의 따뜻한 이미지와 충돌하고, ‘기계가 인간을 돕는다’로 읽히면 작가의 문제의식을 편의적으로 가져다 쓴 것이 된다.

마케팅 입장에서 보면 이런 레퍼런스형 캠페인의 성패는 원작 팬과 일반 소비자를 동시에 설득하느냐에 달려 있다. 원작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세련된 영상으로, 원작을 아는 사람에게는 정교한 오마주로 읽혀야 한다. 둘 중 하나만 잡으면 캠페인은 설명이 필요한 광고가 된다.
현대차의 선택이 흥미로운 이유는 투싼이라는 차의 위치에 있다. 투싼은 2023년 한 해 전 세계에서 57만58대가 팔려 현대차 판매 1위에 오른 볼륨 모델이다.
고급차 브랜드가 소수의 취향을 겨냥해 쓸 법한 레퍼런스를 가장 대중적인 차에 붙였다. 21일 포스터와 23일 필름이 공개되면, 현대차가 그 간극을 어떤 방식으로 메웠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