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하는 쪽과 버스를 운행하는 쪽은 그동안 서로 다른 조건에서 일해 왔다. 개발사는 기성 차량에 센서를 덧붙여야 했고, 운수사는 검증되지 않은 차량을 노선에 넣기 어려웠다. 현대자동차·기아가 그 사이에 표준 차량을 놓는다.
현대자동차·기아는 서울특별시, 서울특별시버스운송사업조합과 ‘레벨4 자율주행 시내버스 상용화 및 산업 생태계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1일 밝혔다. 서울시청사에서 열린 협약식에는 오세훈 서울특별시장, 박민우 현대자동차·기아 AVP본부장 사장, 김정환 서울특별시버스운송사업조합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
기관별 역할 분담
서울시는 자율주행 시내버스 도입과 관련된 정책 수립과 제도 개선을 지원하고 AI 기반 학습 데이터 공유를 추진한다. 서울특별시버스운송사업조합은 운수사의 자율주행 시내버스 전환과 인력, 인프라 지원에 협력한다. 현대자동차·기아는 자율주행 시스템 탑재와 연동에 최적화된 특화 버스를 개발·공급하고 관제 플랫폼을 제공한다.
자율주행 특화 버스의 구성
현대자동차·기아가 개발하는 자율주행 특화 버스는 표준화된 센서 구성을 갖추고 신뢰성 높은 이중화 부품을 탑재해 플랫폼 형태의 차체로 제공된다.
이중화는 조향과 제동, 전원처럼 고장 시 치명적인 계통을 두 벌로 구성하는 설계다. 운전자가 없는 레벨4에서는 한쪽이 멈춰도 차량이 스스로 안전하게 정차해야 하므로 필수 조건에 가깝다. 승객을 태우는 시내버스에서는 요구 수준이 더 높아진다.
센서 위치와 사양을 표준화하면 개발사마다 제각각이던 데이터 형식이 통일된다.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는 주행 데이터 축적량이 성능을 좌우하는데, 서로 다른 차량에서 모은 데이터는 합쳐 쓰기 어렵다. 현대자동차·기아는 이를 통해 개발사가 안정적인 환경에서 기술을 검증하고, 운수사는 운행 연속성을 확보해 운영 효율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관제 플랫폼 구축
현대자동차·기아는 자율주행 버스를 실시간 관리하는 관제 플랫폼을 새로 구축해 이번 실증사업에 투입한다. 실시간 운행 관제와 비상상황 모니터링, 차내 위험상황 대응 기능을 제공한다.
차내 위험상황 대응이 포함된 점이 시내버스의 특성을 보여준다. 운전기사가 없으면 승객 간 분쟁이나 응급 상황, 승하차 사고에 현장에서 대응할 사람이 사라진다. 자율주행 버스 상용화의 과제가 주행 기술만이 아니라는 뜻이다.
수집된 운행 데이터는 서울시 버스시스템과 연동된다.
박민우 사장은 이번 협약이 자율주행 기술을 시민이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 서비스로 발전시킨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레벨4 자율주행 시내버스 상용화가 국내 자율주행 산업의 새로운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셔클 운송플랫폼 선정
지난 9월 현대자동차·기아는 서울시 ‘자율주행자동차 운송플랫폼 민간사업자’ 공모에 선정됐다. 이에 따라 모빌리티 플랫폼 ‘셔클’로 강남과 상암 지역에서 시범운영 중인 자율주행 택시와 새벽동행버스를 이용할 수 있을 전망이다.
차량과 관제 플랫폼, 호출 플랫폼을 한 그룹이 함께 공급하는 구조다. 자율주행 서비스는 차량 제조와 운행 소프트웨어, 이용자 접점이 끊기면 성립하지 않는다. 세 영역을 모두 가진 사업자가 드물다는 점이 이번 협약 구성의 배경이다.
다만 이번 발표에는 실증 노선과 차량 투입 시점, 레벨4 상용화 목표 시기가 포함되지 않았다. 업무협약 단계인 만큼 구체적인 일정은 후속 발표에서 확인해야 한다.